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현구 임나일본부설 주장 날조 사건 (문단 편집) === '김현구가 백제가 군사원조를 받기 위해 공주, 왕자들을 인질로 보내 천황을 섬기게 했다고 주장'했다는 왜곡 === >*백제가 군사원조를 받기 위해 공주, 왕자들을 인질로 보내 천황을 섬기게 했다고 주장 >①“한편 「웅략기(일본서기)」 5년(461)조에 의하면 왕녀들 대신으로 파견되기 시작한 곤지도 도일 목적이 천황을 섬기기 위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의다랑(意多郞)이나 마나군(麻那君)·사아군(斯我君:모두 백제 왕자들임) 등은 곤지 파견의 연장선상에서 도일하고 있다. 따라서 의다랑이나 마나군·사아군 등의 파견도 천황을 섬기기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남자 왕족들의 파견이 천황을 섬기기 위해서였다면 왕녀들의 파견 목적과 일치하게 된다(김현구, 「백제와 일본 사이의 왕실외교」, 『고대 한일관계사의 제문제』, 169쪽)” 백제가 왜에 왕족을 볼모로 보낸 것은 [[삼국사기]]에서도 나온다. 그리고 저것도 교묘한 편집이 있다. 책에서 인용한 부분의 바로 앞뒤 구절이다. >그러나, 백제 왕족들이 일본 천황을 섬기기 위해서 파견되었다는 것은 왜왕권에 대한 백제의 복속을 전제로 하고 있는 표현이다. 그러나 당시 백제와 야마토 정권은 대등한 관계에 있었다. 따라서 '''백제 왕족들이 도일한 참 목적은 다른 데 있었다고 생각된다.'''김현구, 고대 한일교섭사의 제문제, p.169 >백제에서 파견된 왕족의 자손들이 일본에 정착하여 유력한 호족이 되었다면 그것은 장기적으로 백제와 일본과의 우호관계에서 적지 않은 도움이 됐으리라고 생각된다.- 김현구, 고대 한일교섭사의 제문제, p.171~172 >곤지의 파견은 왕녀들의 파견 연장선상에서 파견되었고, 직지의 파견 이유와도 일치한다. 그리고 음다랑이나 사마군과 사아군 등은 곤지 파견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 웅략기 5년조에는 곤지의 파견이 개로왕과 일본과의 우호를 다지는 데 있었던 것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백제 왕족의 파견은 장기적으로 일본과의 우호를 다지는 데 있었던 셈이 된다. - 김현구, 고대 한일교섭사의 제문제, p.172 책을 제대로 인용하면 "천황을 섬기게 했다"는 주장이 없으면 오히려 '''대놓고 반박하고 있다.''' 오히려 '''그런 주장을 한 것은 [[이덕일]]이였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드러다로 왜는 한반도 정세에 여러 차례 현실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아신왕 6년(397)에 '''"왕이 왜국과 우호 관계를 맺고 태자 진지를 인질로 보냈는 기사내용과, 신라본기 실성왕 1년(402) 3월에 "왜국과 우호 관계를 맺고, 내물왕의 아들 미사혼을 인질로 보냈다"는 기사는 당시 왜가 백제와 신라를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두었던 강력한 정치집단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덕일]]''', 교양한국사, 225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